영화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 자꾸만 눈이 가는 캐릭터가 있다. 연기의 깊이나 서사의 중심 때문이 아니라, 입고 있는 옷, 걸음걸이, 머리 모양, 그리고 그들이 풍기는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그들의 패션은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이고 세계관이다. 시간이 흘러도 회자되고, 영화는 끝났지만 캐릭터는 아직도 ‘스타일’로 살아 숨 쉰다.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영화는 단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다. 앤 해서웨이가 연기한 앤디와, 메릴 스트립의 미란다 프리슬리는 영화가 개봉한 지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꾸준히 회자된다. 단순히 옷이 예뻐서가 아니다. 앤디가 점점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 미란다가 고급 패션의 냉정한 세계에서 뚜렷하게 서 있는 존재감, 그 모든 것이 ‘패션’을 매개로 표현된다.
스타일은 곧 정체성이라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 캐리 브래드쇼(『섹스 앤 더 시티』). 그녀는 뉴욕의 길거리를 캣워크로 만든 주인공이다. 휘황찬란한 튀튀 스커트, 믹스 매치된 디자이너 아이템들, 때로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패턴의 조합조차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그 누구도 캐리처럼 옷을 입지 않았고, 그 누구도 캐리처럼 자신감 있게 걸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스타일은 완벽한 ‘비정형’이다. 그래서 더 대담하고 매력적이다. **“나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중이야”**라는 메시지를 무언의 패션으로 전한다.
이와는 또 다른 결로 기억에 남는 캐릭터도 있다. 『클루리스』의 셰어 호로위츠. 90년대 하이틴 룩의 교과서처럼 회자되는 이 캐릭터는 체크 무늬 미니스커트, 니하이 삭스, 플랫폼 슈즈로 전형적인 ‘캘리포니아 퀸카’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이 스타일은 2020년대에도 여전히 Z세대의 레트로 룩으로 소환된다. 유행은 돌고 돌아도, 셰어의 룩은 언제나 '원조'로 기억된다.
재미있는 건, 이들의 스타일은 모두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예쁜 옷을 입은 캐릭터가 아니라, 그 시대의 여성상, 사회적 분위기, 자아 찾기 여정과 겹쳐지면서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패션 아이콘이라 부르고, 그들이 남긴 스타일을 ‘참고’하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할 대상’처럼 바라본다.
스타일은 결국, 자기를 어떻게 말하느냐의 언어다. 단순히 브랜드
나 트렌드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영화 속 그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입을 것인가’보다 먼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옷을 기억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프닝 시퀀스처럼 반짝이는 이미지로 우리 마음속을 걷고 있으니까.